공백/Emptiness: 홍현준 개인전
- 작가 홍현준 작가노트 중
홍현준의 개인전 《공백》은 화면을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오랜 시간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구축하며 다양한 형식과 표현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장식과 효과, 설명과 의미를 덜어내고 가장 근원적인 조형 요소인 ‘선’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의 작업은 낙서와 그래피티에서 출발한다. 아무 목적 없이 반복되던 드로잉 속에서 탄생한 선들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캔버스 위의 회화로 확장되었고, 물감을 쌓아 올리는 대신 화면을 긁어내는 독자적인 음각 드로잉 기법으로 발전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 과정은 더욱 단순하고 명확한 형태로 드러난다. 반복된 드로잉을 통해 정제된 선들은 화면 위에 남겨지고, 그 외의 요소들은 과감히 걷어내어진다.
《공백》에서 말하는 공백은 단순한 비어 있음이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화면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덜어내며 남겨진 상태에 가깝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의 출발점이 되어온 드로잉의 감각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반복적인 드로잉을 통해 축적된 선들은 음각 기법을 통해 화면에 고정되며, 그 과정에서 선의 물리적 감각과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인물과 꽃, 직선과 곡선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하나의 리듬 안에서 공존한다. 힘 있게 뻗어나가는 직선은 망설임 없이 그어진 자유로운 선의 감각을 담고 있으며, 부드러운 곡선은 그 흐름을 감싸며 화면의 균형을 이룬다. 특히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꽃의 형상은 작가가 오랫동안 다루어 온 십자가 구조를 변형한 조형 요소이다. 가로와 세로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구조적 안정감 위에 곡선의 유연한 형태가 더해지면서,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화면의 질서를 형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화면은 서로 다른 긴장과 균형을 만들어낸다.
화면 속 형상들은 더 이상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등을 보이는 인물도,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도 하나의 역할에 고정되지 않은 채 화면 안에 놓인다. 중요한 것은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구성하는 선의 움직임과 리듬, 그리고 형상과 여백이 만들어내는 관계이다.
결국 《공백》은 비워낸 자리에서 출발한 조형적 탐구에 관한 전시이다. 화면에 남겨진 선들은 인물과 꽃, 직선과 곡선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며 최소한의 요소들로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소음과 장식이 걷혀 나간 자리에서 선의 움직임과 리듬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꽃의 형상은 그 안에서 균형과 구조를 형성한다. 이번 전시는 홍현준이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조형 언어를 다시 살펴보는 과정이자, 그 언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화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